
동남아시아의 화교/화인 연구
– 라오스 화인사화의 형성과 변화
– 미얀마 화인사회의 형성과 변화
– 현대 태국 화인사회의 발전과 변화
– 캄보디아 화인사회의 형성과 변화
[참고문헌]
라오스 화인사회의 형성과 변화, 조흥국 저
영국 식민 진출 이후 미얀마 화인사회의 형성과 변화, 조흥국 저
캄보디아 화인사회의 형성과 발전, 조흥국 저
현대 태국 화인사회의 발전과 변호, 조흥국 저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동남아시아의 화교. 화인, 조흥국 저
[본문내용]
라오스 화인사회의 형성과 변화
라오스 화인 사회의 특징 중 첫째는 화인사회의 상당 부분이 윈난(雲南) 중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의 지리적 조건의 결과다. 둘째는 라오스는 최근까지 중국인들에게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화인들의 숫자가 작고, 화인들의 사회적 및 경제적 활동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라오스의 화인사회는 미얀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해양을 통해 입국하여 정착한 해로화인(海路華人)과 중국 남부의 육상 루트를 통해 들어온 육로화인(陸路華人)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인들이 언제부터 라오스 지역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지리적 이유 때문에 일찍부터 중국과의 대상(隊商)무역과 조공관계가 발전했다.
메콩강 중류 지역의 이러한 시장을 둘러싸고 19세기 초 라오 상인과 크메르(Khmer) 상인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는 무역 상인들이 장사를 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상인 그룹은 중국 상인들이었다. 라오스 지역의 경제는 태국과 라오스 간 정치적 관계의 진전에 따라 방콕을 중심으로 한 태국 중부의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그것은 한편 태국의 해외무역 특히 중국 무역에 크게 의존되었다. 1855년 보링(Bowring) 조약의 체결 이후 유럽 자본이 태국의 무역시장을 지배하게 되기까지 수 세기 간 중국과 활발한 무역관계에 있었다. 특히 18세기-19세기 전반 중국과의 무역량이 팽창했으며, 그 과정에서 19세기 초의 수십년 간 라오스와 태국 간 무역도 증대되었다. 태국-라오스 무역은 19세기 중엽 이후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중국-라오스의 전통적인 대상무역은 지속되었다.
프랑스 식민 시대, 특히 20세기 전반에 라오스의 화인 인구가 증가했다. 중국에서 1949년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배한 후 국민당 소속의 중국 군인들 중 일부가 라오스로 들어와 정착했다. 하지만 그 수는 미미했는데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프랑스 식민 정부의 정책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중국인 노동력을 도입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위험하다고 보았다. 베트남인들을 선호한 프랑스의 노동력 정책에도 불구하고 식민 시기에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라오스로 들어와 정착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태국과 베트남에서의 생계 활동에서 성공하지 못한 화인들로서 새로운 경제 활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라오스로 온 자들이었다. 식민 시대 초기, 라오스의 무역과 산업은 대부분 화인들의 손에 있었다. 상업에서 화인들의 이러한 지배적 위치는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중국 상인들이 라오스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라오스 엘리트들은 중국 상인들에게 자본과 정치적 보호를 제공했고, 중국 상인들은 이들을 대신하여 국내의 사업 뿐만 아니라 해외무역 사업을 수행했던 것이다…







